올해 ‘독립보행’에는 모두 78편의 작품이 도착했습니다. 예선 심사를 마치고 돌아보니, 올해만큼 애니메이션이 서 있는 자리를 깊이 생각하게 한 해도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AI 도구를 전면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이미지의 가능성을 실험한 작품들이 다수 있었고, AI를 보조적인 수단으로 다루며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한 작품들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시간 다져 온 자신만의 기법과 애니메이팅을 지켜 온 감독님들의 작품들도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작품들이 ‘독립보행’이라는 하나의 장에 모일 수 있다는 사실에 심사위원으로서 깊은 감사를 느꼈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가장 오래 마음이 머문 것은 한 컷 한 컷에 감독의 손끝과 시간이 배어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기술이 많은 것을 대신해 주는 시대에 자신의 방식으로 프레임을 쌓아 올리는 일은 어쩌면 가장 느리고 고된 선택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움직임에는 어떤 도구로도 대신할 수 없는 질감과 호흡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화면들 앞에서 여러 차례 영감을 얻었고, 그런 감독님들께 마음 깊은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새로운 도구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가는 시도들 역시 독립 애니메이션의 진취적인 정신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랜 고민과 논의 끝에 24편의 작품이 본선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아쉽게 본선에서 함께하지 못하게 된 작품들도 있지만, 심사를 통해 만난 모든 작품은 저마다의 귀한 가치와 빛을 품고 있었습니다. 심사위원의 선택이 작품의 가능성과 가치를 규정짓는 것이 아님을 조심스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오래 붙들고 고민하여 작품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내놓는 일은 그 자체로 누구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예술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완성해 주신 모든 감독님들의 노고에 진심 어린 존경을 표합니다.
AI 기술의 발전은 앞으로도 애니메이션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심사를 마치고 나니, 도구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애니메이션이 주는 감동의 기본이 살아 있는 작품은 오히려 더욱 돋보이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움직임에 마음을 담는 일이 지닌 힘을 올해의 작품들을 통해서 다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본선에 오른 24편의 작품이 관객 여러분과 만나 어떤 대화를 만들어낼지 기대하며, 영화제에서 뵙겠습니다.
- 독립보행 예선 심사위원 김경배, 송시형, 추혜진을 대표하여 송시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