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스케치] 미리내로
일시 2025.9.20(토) 19:45 상영 후
홍보팀 이기근
모더레이터_ 추혜진 프로그래머
김보솔 <광장>

모더레이터 : 먼저, 너무 감사하고 잘 봤습니다. <광장>이 올해 안시에서 ‘콩트르샹’이라는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지 않았습니까?
관객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가장 오래된 정평이 나있는 영화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구요.
특히 ‘콩트르샹’이라는 장편 부문은 2019년에 안시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경쟁 부문인데요.
기존의 장편이 보여주지 못하는, 예를 들어서 굉장히 창의적이고 실험적이고 작품들을 선정을 해서 수상을 하는 부문이라 들었어요.
(김보솔 감독님이) 올해 콩트르샹 심사위원상을 수상하셨어요. 이게 첫 번째 장편 데뷔작으로 알고 있는데, 어떠셨어요?
김보솔 : 수상했을 때 굉장히 기뻤고요. 당연히 기쁘고… 기뻤습니다. (웃음) 그런데 끝나고 나서는 사실 좀 화가 났었어요. 저희가 예산이 너무 적어서,
만약에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더 잘 만들었을 것 같은데, 그 아쉬움에 화가 났던 것 같고… (웃음) 그다음에는 기뻤죠.
모더레이터 :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장편 제작 부문의 트랙에서 만드신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작품 제작 배경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보솔 :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스템이, 원래 정규 과정을 1년간 단편을 만드는 과정이 있어요. 그래서 수료하면 장편을 지원할 수 있거든요.
제가 졸업하고 장편 프로그램을 통해서 2019년도 5월에 스타트를 했던 작품인 거죠. 굉장히 오래 걸렸고요.
사실은 장편이 아니라 20222년도에 개봉했던 박재범 감독 엄마의 땅이라는 장편이랑 같이 중편으로 두 개를 묶어서 개봉을 할 계획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저희 둘 다 장편을 만들게 되었네요.
모더레이터 : 좋은 결과를 얻기는 해서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나긴 했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 6년 정도 걸린 작품인데요.
그 과정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작업을 하신 건가요?
김보솔 : 네, 그렇죠. 그런데 중간에 5년 11개월 정도 걸렸는데… 그 기간 내내 <광장>을 작업을 한 게 아니라 중간에 <유니크 타임>이라는 오유진 감독의 단편도 하나가 있었고,
김창수 감독님이 준비하시던 장편의 애니메틱 과정도 참여를 했었고, 외주 일들이 중간중간에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작비와 스태프들 인건비가 필요해서… 제가 2023년에 모든 예산이 없어졌을 때 그걸 메워야 했어요.
모더레이터 : 이전에 단편 작업도 한번 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단편을 하신 걸로 기억을 하고 있는데, 2019년에 <홈>이라는 작품으로 단편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바로 장편으로 제작이 들어가신 거였나요?
김보솔 : 네, 쉬지 않고 바로 들어갔습니다.
모더레이터 : 사실, 제가 또 약간 뒷조사를 할 수밖에 없어서… (웃음) 영화를 전공을 하셨다고 제가 들었거든요.
그리고 영화를 전공하면서, 유일하게 애니메이션으로 졸업 작품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영화를 전공을 하면서 ‘졸업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하겠습니다’라고 할 때,
학교에서 어떤 제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는데요. 어떠셨어요?
김보솔 : 당시에 제가 영화과를 졸업하고 영화연출을 세부 전공으로 졸업했는데, 그때 제가 썼던 시나리오 자체가 실사로 찍을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고양이가 12번의 목숨이 있는데, 중간에 사람의 목숨을 얻으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 시나리오였거든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는 제가 영화과를 다님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손에 놓지 않았거든요. 대학 때, 스토리보드를 굉장히 많이 그렸기 때문에. 가능하겠다 싶어가지고,
애니과 사무실 문을 두드렸어요. 그때 조교 ‘졸준위원장’이 프로그램을 하나 가르쳐주더라고요.
TV Paint라고. 그래서 그걸 독학해서 졸업작품으로 만들게 되었던 게 한국영화아카데미 포트폴리오가 됐어요. 그래서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홈>이라는 단편을 만들고 여기까지 왔네요.
모더레이터 : 졸업한 뒤에 중간에 회사 생활을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리고 한국영화아카데미로 가셨는데, 창작에 대한 갈증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김보솔 : 졸업 후에 바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간 게 아니라, 전시 기획하는 회사에서 영상 업무를 전반적으로 맡았어요.
영상에 관련된 모든 일을 했었는데 그때 회사가 되게 좋은 회사였어요. 제가 살면서 만난 베스트 파이브 안에 드는 회사였어요.
정말 똑똑한 대표님이 계셨고, 정말 좋은 학교 선배님도 계셨는데 제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과 저는 창작을 안 하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인생이 너무 괴로워질 것 같아가지고, 아주 긴 고민 끝에 회사 문을 박차고 ‘저 영화 할 겁니다’하고 나와가지고, 이렇게 됐네요.
모더레이터 : 그래서 좋은 작품을 저희가 만날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본격적으로 <광장>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관객분들에게 질문을 받아보면서 편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관람하면서 계속 장면들에서 영화적 문법이 눈에 띄었거든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광장>이라는 작품이, 사실은 실사로 찍어도
굉장히 좋은 흥미로운 스토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로 찍을 수 없는 사실은 환경적인 것들도 있잖아요. 로케이션 문제도 있고…
북한의 대사관 주재원, 서기관이라는 모티브를 어떻게 시작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어떤 영감이나 계기가 있으셨나요?
김보솔 : 네. ‘영화의 시작은 어디에 있었나’, 정말 많이 받았던 질문입니다. 제가 이과였어요. 생물 수업이었는데, 선생님이 몸살 때문에 아프셨거든요.
그래서 고등학교 수업시간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문과 선생님이 올라오셔서는 ‘자습해라’고 말하셨어요.
그러다가 그 선생님이 갑자기 남북한과 중국, 일본, 미국에 대한 국제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사람만 들어’하면서 되게 흥미롭게 알려주셨거든요.
그 당시, 선생님의 말씀은 정확히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런데 교실의 분위기, 제 고등학교 때 분위기는 엄청 또렷하게 남아 있었거든요.
그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어요.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없었구요.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나중에 내가 한 이야기가 더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셨어요.
그 책이 뭐였냐면 ‘리영희 저널리스트’라는 분의 <대화>라는 책이었어요.
잠깐 리영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50~60년대 활동했던 저널리스트거든요. 그분이 한겨레 신문 창단 멤버였는데, 정치 외교부 기자였어요.
그분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남북한정세 때 남북 갈등과 2차 냉전 시기가 너무 고조됐을 때, ‘우리 남북한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
높은 긴장을 그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거는 차가운 비바람이나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다’라는 다른 입장을 처음으로 저널에서 말씀하셨던 분이고,
그 전까지는 북한을 북한이라고 표현을 안하고 북괴라는 말로 북한을 표현을 했는데, 이분이 처음으로 북한이라는 표현을 했었어요. 나중에 그분의 책을 도서관에서 다 읽게 됐어요.
제가 예술학이 부전공이었는데요. 미술사를 공부하면 어쩔 수 없이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리고 남한에 있는, 한국 사람이라면 군대에서 북한에 대한 존재를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리고 이 시대에 있는 젊은 사람의 정체성 안에서
계속 북한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창작으로 한번 다뤄보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영화 공부할 때 한 기사를 읽었는데, 실제 스웨덴 외교관이 3년간 북한에서 근무를 하다가 남한에 왔을 때 한 인터뷰 내용이었어요.
그때가 박근혜 정부 시기였어서 남북한의 대화가 엄청 차단돼 있었던 시기라, 모두가 궁금했었던 시기였거든요. 해외뿐만 아니라 남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요.
그래서 달려가서 그 외교관한테 인터뷰를 했죠. ‘북한 생활이 어땠어요?’하고 질문하니, 그 사람의 첫마디가 ‘너무 고독했어요’라는 대답이었어요.
그 사람이 실제로 대사님이랑 단 둘이만 근무를 했는데, 대사님이 장기 출장을 가게 되면은 아무도 없었대요.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게 같이 근무하는 북한 직원들이랑 맥주 한 잔을 하는 게 소원이었대요. 그런데 그걸 못하니까, 그 사람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아무도 없는 광장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는 거였다는 내용이 기사에 있었고, 그동안 제가 북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그 기사를 읽으면서 되게 강렬하게 그려졌던 이미지 한 장,
그 광장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는 이미지가 이렇게 트리거가 된 거죠. 그래서 이걸 단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만들어지게 됐어요.

모더레이터 :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외로움’이 중요한 키워드가 됐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인터뷰 기사를 읽어볼 때, 그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나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존재하지만, 좀 틀리긴 하겠지만, 동시에 사치스러운 감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선들이 계속해서 누군가를 감시해야 되고, 충분히 감정을 느낄 여유조차 억압받는 현실 속에서 그런 감정이 쉽게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목인 ‘광장’ 역시 양가적이고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시선에서 보느냐. 광장이 굉장히 자유롭게도 보이지만,
다른 시선에서는 굉장히 통제적인 공간으로도 읽히거든요. 예를 들어,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어서 자유롭게 서 있는 것 같지만, 누군가는 계속 통제를 받는 장면에서
이중적인 메타포가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어떤가요? 어떻게 작품 제목을 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보솔 : 광장이 제목이 됐던 것은 그 기사 속에서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자전거를 타는데, 그 장소가 광장이었다는 것도 있지만
최인훈 작가 소설 <광장>에서의 중요한 공간 키워드가 밀실과 광장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최인훈 작가의 <광장>에서 말하는 밀실과 광장의 의미는 개인이 온전한 개인이 되는 것에
밀실이라는 개인과 개성이 개발되는 공간과 사회화가 이뤄지는 광장이라는 공간이 서로 유기적으로 순환했을 때, 건강한 인간이 된다는 게 그 소설 안에서 갖고 있는 공간의 메타포거든요.
그런데 사실 제대로 작동하진 않지만 명준이 뭔가 제대로 된 인간이 되게끔 아주 찰나 잠깐의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광장이라는 제목이 좀 복합적이죠.
그리고 명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덧붙이자면, 공개된 시놉시스는 로맨스를 많이 앞세우고 있어요. 사실 주인공은 보리가 아니라 저는 명준이라고 상정을 하고 이야기를 쓴 거였거든요.
이 영화의 첫 시작, 처음 시작하게 됐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외로움’이었어요. 보리가 느끼는 외로움.
그래서 첫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질문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공간이어서 PD님한테 부탁해서 실제 탈북하셨던 분과의 인터뷰를 잡았어요.
그래서 그분과 4시간 정도를 인터뷰를 했는데, 실제로 평양에 거주하셨던 보위부 직원이셨어요.
상황을 너무 잘 알고 계셨고 제가 초고를 쓰면서 생겼던 많은 질문들이 굉장히 많이 해소가 됐어요. 이제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짐 정리하면서 제가 지나가는 말로 여쭤봤어요. ‘팀장님은 혹시 북한에 계실 때 외로우셨던 적 없으세요?’라고 물어봤더니,
그분이 외로웠던 적이 없었다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너무 불안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 말 한마디가 제 시나리오를 완전히 뒤집어 놓게 만들었어요.
키워드는 똑같이 외로움인데 보리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명준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것이 저는 더 높은 가치를 영화에서 표현해 준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인터뷰 마치고 난 뒤 시나리오가 지금의 이야기의 뼈대처럼 완전히 뒤바뀌었죠.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명준의 외로움을 광장에서 찰나지만 보여주는 게 목표였고 영화는 거길 향해서 달려가게 만들었어요.
그 불안의 장막을 깨고, 영화 안에서 이것만 표현된다는 이 영화는 괜찮겠다. 라고 생각을 했었죠.
모더레이터 :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지훈의 대사가 모든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외로워서라는 한마디가 그런 함축적인 것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영화에 대해서 배경이라든지, 어떻게 이 작품이 시작이 됐는지에 대해서 감독님이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혹시 관객분들 중에서 궁금한 내용들 있으시면 질문을 한번 받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보리가 세상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외로움을 생각했는데, 명준의 불안에서 외로울 틈이 없는 그런 약간 생존에 가까운 고독 얘기도 듣게 되어 좋았습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외로움은 어떤 것에 가까운가요?
A. 보리의 외로움과 명준의 외로움 쪽에서 보리의 외로움은 우리가 흔히 익히 알고 있는 외로움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광장> 후반부쯤에 외로움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서칭을 좀 해봤거든요.
그런데 외로움이라는 말 자체를 세익스피어가 처음 자기 소설에서 했었던 말이래요.
그 말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쓰게 되는 시기는 산업혁명 이후였대요. 그게 개인이 누구에게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보리가 딱 그런 상황인 거죠. 제가 생각하는 외로움도 그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던 것 같아요. 명준이 느끼는 외로움은 조금 다르죠.
우리가 방금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불안의 장막을 깨고 외로움을 느낀다고는 했지만, 명준의 외로움은 제가 생각하기엔 자유랑 조금 더 비슷했어요.
명준한테 외로움은 사치의 감정이면서 동시에 광장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거니까.
Q. 이렇게 장편 애니메이션을 하면 예산도 적었을 거고, 독립 작품이니까 분명히 3D로 만드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을 했거든요.
저도 작업자니까, 관람하면서 볼터치가 신경 쓰이는 거예요. 볼터치를 다 뺐으면 서너달이라는 기간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리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서 궁금합니다.
A. 먼저 3D로 하지 않았던 것은 저희 메인 스태프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엔딩 크레딧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메인 스태프이 거의 3명 정도였거든요. 원화도 거의 둘이 작업했어요.
그런데 그 둘이 갖고 있는 기반이 다 2D 기반이고, 3D를 배워서 완성을 내는 데까지 너무 많은 예산과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겠다는 판단이 있었어요. 그래서 3D로 가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볼터치는 병인 것 같아요. 개인적인 병. 키샷 테스트를 해봤을 때 2D가 갖고 있는 플랫함을 없애는 고민을 되게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텍스처를 줘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는 볼터치까지는 생각 안 했지만, 저희 작화 감독님께서 볼터치를 고집을 하셔가지고, 볼터치를 넣는 것, 그리고 적은 노동으로 2D의 플랫함을 없애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배경에 텍스처를 넣는 것, 볼터치의 자글자글한 그레인이 있는 브러쉬를 한번 넣는 것 그리고 그림자에 브러쉬가 있는 노이즈가 낀 외곽선 그거 딱 3개거든요.
외국에서도 한 번 받았던 질문이라서 새롭네요.
Q. 한국영화아카데미 관심이 많아서 외부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스태프 구성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안에서 이렇게 다 구성을 하신 건지, 아카데미 지원을 통해 특정 장소에서 작업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A. 아카데미에는 연출자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생판 모르는 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스태프 구성을 했습니다. 장소 같은 경우는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산울림 소극장 옆에 한국영화아카데미 건물이 있었어요. 지금은 영화교육센터로 바뀌었지만, 그곳 지하에 장비 저장실과 자재실이 있었는데, 거기를 하나 임대를 해줬습니다.
겨울엔 추워서 손이 얼어서 작업도 못하는 곳이었어요.
모더레이터 : 약간의 세부 디테일도 있었어요. 그때 두 사람이 다리 밑에서 만났을 때 막 눈이 오면서 서로 얘기할 때 그 입김 같은 것들은 지나칠 수 있는 터치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것들이 장면을 알게 모르게 완성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까 볼터치와 더불어서요. 어떠세요? 그런 섬세함 같은 것들은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성격이십니까?
김보솔: 절대 못 지나가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신경 썼죠. 이 추위는 무조건 느껴져야 된다. 그래서 볼터치 같은 경우, 어떤 씬에서는 일부러 그 빨간색이 올라오게끔
색 보정을 한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눈 내리는 것도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수정했습니다. 제가 그런 것을 그냥 못 지나갑니다.
모더레이터 : 그 전에 인터뷰 기사에서 ‘감독이면 고집이 있어야 된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김보솔 : 제가 실제로 그렇게 대답하진 않았습니다. (웃음)
Q. 북한 사투리가 있을 테고,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말이 있잖아요. 그 사이에서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지만 북한 사투리가 그렇게 드세지 않았다고 느껴졌어요.
조금 더 남한 사투리를 가지고 있는 저에게 굉장히 쉽게 스며들어 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구별은 분명히 됐고요.
다른 말투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제가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는데, 그 연기의 톤을 어떤 지점에서 결정을 하셨고 어떻게 유도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저 배우들은 성우일까요? 배우일까요? 이런 질문도 궁금했고요. 감독님께서 치밀하게 계산을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식으로 목소리 연기 톤을 계획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되게 많이 찾아다녔어요. 선녹음을 한 케이스가 아니에요. 저는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한 편이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의 첫 번째는 이 사투리 때문이었어요.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를 엄청 찾아다녔거든요. 첫 번째 케이스로는 ‘복주’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필름 메이커스에 보리랑 영준이 싸우는 짧은 스크립트를 구하려고 올려놓고 배우분들 목소리 샘플을 받았어요. 일단 성우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북한말을 배워야 됐거든요.
제가 북한을 다루는 데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태도가, 남한에서 다루는 미디어처럼 북한을 다루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특수요원이 나온다거나 북한의 과장된 사투리를 나오는 게, 저도 너무 듣기 거북한데 북한 사람들이 들으면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이게 나중에 북한에서 보여졌을 때
적어도 북한 사람들이 욕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북한 사투리를 학습할 생각에 성우분들과 할 수 없었죠. 아마 아실 거예요. 성우분들이 어떻게 작업을 하시는지.
그래서 훈련을 해줄 성우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필름 메이커스에 스크립트를 올려서 남자 배우분들 샘플 받는 와중에, 이백오십 분이 지원해주신 가운데,
한 여자 분이 지원을 해주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목소리였어요.
저는 목소리 연기하는 것은, 이런 유니크한 목소리라면은 연기를 조금 못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복주는 캐스팅이 된 거고, 그다음에 명준과 보리는 계속 배우분들을 찾았죠.
캐릭터 디자인을 놓고 목소리가 붙는지 안 붙는지를 봤어요. 그렇게 캐스팅이 된 다음, 4시간 인터뷰 해주셨던 보위부를 나온 탈북민 분에게 가서고 코디네이팅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분이 알고 보니까 예전에 북한에 계셨을 때도 보위부에서 연극 파트에 계셨었대요. 보위부에 그런 게 있는지 저도 몰랐는데, 예전엔 배우를 하시다가 북한에서 예술 감독을 하셨대요.
워낙 자유로우셨던 분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 때문에 탈북을 하셨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남한에선 뭘 하고 계시냐면 통일부 산하 소속에서 연극 무대를 연출하는 일을 하고 계세요.
그래서 그런 일들을 굉장히 많이 하셨던 거죠. 실제로 헐리우드나 한국에서 북한이 소재로 나온다고 하시면 다 그분한테 돈을 받고 레슨을 받는다고 하시더라고요.
회당 100만 원, 인당 100만 원. 그래서 유명한 배우분들 다 그분에게 코디네이팅을 받고 가셨는데. 저희는 공짜로 4번 정도를 해주셨죠.
그래서 그러면서 북한 사투리를 익혔고, 그다음에는 제가 한 게 별로 없어요. 다 배우분들이 알아서 잘 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한 역할이라고는 목소리와 캐릭터가 잘 맞는지를 판단한 거죠.

모더레이터 : 사실은 그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특히나 목소리, 보이스톡 디렉팅이 상당히 어렵잖아요. 사실은 목소리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잖아요.
굉장히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만, 거기서 오는 약간의 간극이라든지. 그런 지점들이 늘 고민인 것 같기도 해요.
저도 75분 정도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그냥 드라마처럼 지나가는 느낌을 받아서 굉장히 잘 코디네이팅이 됐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첫 데뷔작이기도 하고, 계속해서 영화제에 소개가 되고 계속 상영이 될 텐데요. 이 작품과 더불어서 또 차기작의 대한 고민도 같이 하실 것 같아요.
어떤 계획을 갖고 있으신지 또 어떤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싶으신지 마무리 멘트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보솔 : 다음 작품의 트리트먼트가 사실 있어요.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얇아가지고, 아마 내년에는 그 시나리오를 디벨롭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 이야기는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세 자매가 귀신 때려잡는 이야기입니다. 작업들 계속 관심 갖고 지켜봐 주시기를 바라고요.
또 <광장>도 널리널리 입소문 많이 내주셔서 좋은 작품 꼭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너무 감사드리고요. 또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으로 만나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