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규범을 전복한 가장 유쾌한 퀴어 판타지, 레즈우주공주>

 

우주 너머, 작은 행성 클리토폴리스는 레즈비언을 위한 완벽한 유토피아이자 주인공 사이라가 태어난 곳이다. 왕족의 외동딸로 모든 것을 가진 듯하지만, 사이라의 내면에는 언제나 불안감이 가득하고, 연인 키키와의 쓰라린 이별 이후 그녀는 깊은 혼란에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키키가 악당들에게 납치되면서 기이하고도 흥미진진한 모험이 시작되고, 사이라는 이 여정을 통해 숨겨진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작품의 배경에는 호주 출신의 공동 감독이자 작가 엠마 휴 홉스와 릴라 바게스의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이 자리잡고 있다. 인디 감성, 코미디, SF, 퀴어 서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애니메이션은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 ‘릭 앤 모티’에서 느껴지는 엉뚱함과 기발함의 DNA가 엿보인다.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패러디 요소와 화려한 색감의 세일러문풍 스타일의 세계관은 시각적 즐거움까지 더한다.

 

레즈우주공주는 단순한 코믹 판타지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주류에서 비껴선 엉뚱하고 투박한 캐릭터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하면서 페미니즘과 가부장제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SF 코미디라는 외피를 빌려 전통적인 젠더 규범을 통쾌하게 뒤집으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작품은 호주의 유명 성우들이 대거 참여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으며, 대중성과 독창성을 절묘하게 아우르며 새로운 감각의 서사를 창조한다. 은하계 어딘가에서 펼쳐지는 이 기묘하고도 당당한 퀴어 판타지는 우스꽝스러움을 거침없이 포용하면서도 정체성의 혼란과 소외를 겪는 모든 이들에게 유쾌하고도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레즈우주공주는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퀴어 서사의 지평을 여는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추혜진